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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S AND YEARS (2019) / 이어즈 앤 이어즈 말 많은 후기

2020년 상반기, 왓챠가 가장 밀고 있는 TV시리즈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광고를 때리던 드라마

엠마 톰슨의 출연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BBC, HBO 공동 제작 

영국에서는 19년 5월부터

미국에서는 19년 6월부터 방영했던 영국 드라마로 

총 6화로 구성,

각회 차별 러닝타임은 1시간가량인데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았고

실제로 5화 반을 하루에 몰아봤다. 

 

극의 배경은 2019년부터 2034년, 

빈곤, 난민, 세대 간 갈등, 비상식적 정치를 비롯해

현대사회에서 갈등을 빚는 다양한 문제들이 3대 가족의 가정사와 함께 전개된다.

심지어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종종 이슈화 되고 초점이 맞춰지는 동성애는,

이 시리즈 속에서 로맨틱적 요소로 보이기는 하지만 이슈화 된다는 느낌은 없었다.

오히려 난민문제에 좀 더 초점을 맞추기 위한 장치 같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사진출처: Matt Squire / HBO

 

극이 끝나기 까지, 매번 가족들끼리 연락을 하고 모이는 게 기괴해 보일 정도로 세상은 미쳐 돌아가고

그런 모습들을 현실적으로 연출한 이 드라마는

좀 더 현실감있는 버전의 블랙 미러 시리즈 같기도 했다.

 

실제로 거론된 '트럼프정권'과 그에 따라붙는 이미지들이 더 그랬고, 

정치적 무력감을 느끼고 있는 국민들과 마케팅화 되어가는 정치가 그랬다.

이런 적나라한 상황을 표현한 드라마가 제작이 되고, 채널을 탈 수 있는 

영국과 미국의 미디어산업 환경이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설정, '트렌스 휴먼' 

가장 인상적이고, 충격적이기까지 했던 설정은,

성을 전환하는 트랜스 젠더를 넘어선 인간을 데이터화 하는 '트랜스 휴먼'이었다.

 

사진 출처: www.walesonline.co.uk

 

실제로 딸, 베서니가 트랜스젠더가 되길 원하는 걸로 착각 한 부모는 

자신들은 성별을 중요시 하지 않는다며 관대한 태도를 취하지만 

젠더의 정체성이 아닌 사람과 데이터간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제대로 된 이해나 공감 과정을 거치기 전에 

큰 충격에 빠지고 데이터를 차단하고 아날로그 생활로 돌아가는 등

베서니에게 있어서는 극단적 조치를 취한다. 

 

세대 간의 갈등을 새로운 가상 설정을 내세워 잘 풀어낸 것 같았다.

살아온 세대가 다르고, 자라면서 배우고 익힌 것들이 다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세대 간 갈등.

이 드라마는 '트랜스휴먼' 이라는 극 중의 가상 설정을 통해,

우리에게 기성세대 입장에서의 시선과 감정을 체험하게 한다.

 

각자가 이미 달라도 너무 다른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만

세상은 멈춰있지 않고 계속 변하기 때문에,

심지어 점점 변하는것은 많아지고 그 속도도 빨라지기 때문에 

어쩌면 당장은 당연한 혼란이고 갈등이다.

하지만 결국 베서니는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고 

드라마가 막을 내리는 순간까지 천천히 트랜스 휴먼화 되는 모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멈추지 않는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기를 그만두고 데이터로, 파장으로 영원히 살아갈 것이라는

어떻게 보면 황당하기까지 한 설정을 보면서

디지털화되어가는 생활에 익숙해져 생각하기가 점점 귀찮아지는 현대인들이 극단화된다면

저런 설정도 터무니없는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될 시대가 오는 것도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닐 것 같다.

 

 

전문성, 책임감보다 이미지화, 마케팅이 중요시되어가는 사회

극의 메인이 되는 비비언 룩의 비 상식적이고 경악스러운 정치 행보는

보는 내도록 화가 났고, 보고 있기 힘들었다. 

 

사진 출처: BBC

 

기업가 출신의 비비언 룩은

아무런 지식도 없이 그저 '쿨'한 이미지와 마케팅만으로 수상으로 까지 선출되는데

웃긴 사람이라며, 마음에 든다며 그녀에게 표를 던져 호감을 표한 사람들은 물론

모든 영국 국민들의 생활을 망가뜨리고 제대로 된 해결책을 단 한 번도 제시하지 않는다. 

투표는 호감을 표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좀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선택이다. 

 

표현의 자유는 중요하고, 충분히 존중한다.

하지만 비비언 룩의 모습을 보면서 비단 정치분야뿐 아니라

모든 것이 본질보다는 이미지화된 모습들이 더 신뢰를 얻는 현대 사회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실존하는 것인가,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것보다 

이미지화된 모습이 더 신뢰를 얻는 현상은 인터넷의 발달이 크게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우리의 생활은 더 쉬워졌다.

인터넷으로 사람의 신상을 털고, 테러를 포함한 각종 범죄를 저지르는 것 마저 가능해진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지켜지기보다 퇴색되기 쉽고, 잘못된 여론을 형성해 사회적 혼란을 가져오기 쉽다.

 

이는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될 문제라고 생각된다. 

 

날조된 정보나 가짜 뉴스, 조악한 시사, 정치 채널이 판을 치는 유튜브가 특히 그렇고,

저널리즘의 본분보다 화제성을 따지는 언론이 그렇다. 

날조된 정보를 포함해 넘쳐나는 정보들 속에서,

사람들은 피로감을 느끼기 쉽고, 확인을 통해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과정을 생략하기 쉽다.

 

피로감에서 오는 정치적 무력감을 떠올리기도 했는데

'피로감' 특히, 정치나 사회문제에서 오는 '피로감'은 경계해야 될 대상이다.

'정당한 절차를 밟아 이미 차지한 권리'를 뜻하는 '기득권' ,

지금은 그 의미가 많이 오염된 기득권층이

자신들만의 세상을 위해 바라는 게 바로 비 기득권층의 '무력감'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느끼는 '피로감'은 생각보다 사회에 더 많은 악영향을 끼친다. 

 

극 중 극이 시작되기 전과 끝까지의 세월을 겪으며 역사를 지켜본 할머니, 뮤리얼은

괴물은 끝없이 나올 거라고, 지금 당장 눈앞의 괴물을 해치웠다고 해서

지금에 안주하면 안 된다는 말을 하는데

그 말이 꼭 지나간 역사가 지금 혹은 가까운 미래를 향해하는 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종이서류를 보관하는 캐비닛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를 정도로

디지털화가 진행된 극 중에서 조차

중요하게 다뤄야 할 자료들은 결국 종이서류로 관리되고

전력이 부족해 종이를 사용하게 되는 모습들이 인상적이었다. 

클래식이라 불리는 고전들이 지나간 모든 긴 세월을 버티고도 살아남은 이유는 

고전의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것들이 외면받지 않은 것이라 생각한다.

흉흉하고 험한 세상일수록,

약자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사회일수록

무력해지는 것보다 스스로가 똑똑해지고 현명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디스의 사랑과 대니얼의 사랑

 

극 중 약자로 설정된 빅토르(난민, 성소수자)를 위해 '직접적' 행동을 하는 사람은

이디스와 빅토르의 연인 대니얼이다. 

 

대니얼은 사랑하는 연인을 위한 행동을 하면서 사기에 휘말리고 위험에 처한다.

이디스는 자신의 동생을 죽음에 휘말리게 한 빅토르를 도와 약자들을 돕는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 

모든 시스템이 붕괴되고, 정상적인 일상이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 

이디스는 약자들의 편에 섰다.

 

왜 항상 세상은 좀 더 남을 배려하고, 좀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힘들어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는 편인데

극의 초반부터 괴짜와 피곤한 스타일로 비치던 이디스가 그랬다.

이디스가 행하는 선이 결국 본인 자신에게는 피해로 돌아오는 모습들을 보면서 씁쓸했다.

 

세상에 가장 순수한 사랑이 있다면 그건 희생이라고 생각한다.

 

극 중 누구보다도 약자의 편에서 적극적으로 행동한 이디스는

그 모든 것이 구원도, 자신의 희생도 아닌 그저 사랑이라 말한다.

 

조건 없이 베푸는 이디스의 희생도 사랑이고, 

연인 빅토르를 구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사기를 의심하면서도 돈을 쏟아붓고, 죽음에 휘말린 대니얼의 행동 역시 사랑이다. 

며느리의 신경을 긁지만, 결국엔 식구로 인정한 시어머니(이자 할머니) 뮤리얼의 행동도

동생의 죽음에 분노해 감정적이고 비인도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스티븐의 행동도

아버지의 그런 행동에 실망하고 경멸의 시선을 보내는 베서니의 행동도

모두 다른 행동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사랑에서 비롯된 행동이다. 

 

극 중 엔딩은 선이 악을 이긴 엔딩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선으로 악을 일단락한 엔딩이라고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완벽한 악은 있어도, 완벽한 선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선을 이용하는 건 언제나 악이고,

선을 이용할 때 악은 더 강력해진다고 생각하지만,

다행히도 선은 강자보다 약자의 앞에서 힘을 발한다.

결국에 악을 이길 것은 또 다른 악이 아니라 선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극 중 반복되는 선과 악의 대치가 그렇듯, 선과 악은 언제나 공존할 것이며

악이 없다면 더 이상 선은 악과 대비되는 선이 아닐 것이고

선이 없다면 더 이상 악은 선과 대비되는 악이 아닐 것이다.

 

 

사진출처: BBC

 

 

선과 악이 공존하는 사회 속에서,

악에 치우쳐가는 세상을 좀 더 선한 쪽으로 바꿔보려 한 이디스는

자신의 공을 '우리 모두' 에게 돌리고, 그게 바로 사랑이라 말했다. 

우리 모두가 사랑으로 잘못을 고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이어즈 앤 이어즈를 보면서, 

평소에 불만을 가지고 있거나, 회의감을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고 정리해보는 기회가 됐던 것 같다. 

확실히 자극적인 콘텐츠이고,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를 안겨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필요한 스트레스였다는 생각도 들었다.

 

 

충분히 더 호들갑스럽고 심각하게 다룰 수 있는 소재나 요소들이 많은 이야기였는데

오히려 담담하게, 하지만 묵직하게 다뤄준 제작진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맥심 밸드리가 연기한 빅토르 고라야라는 캐릭터는 정말 매력적이어따..

 

사진 출처: BBC

 

 

 

* 이어즈 앤 이어즈는 2020년 3월 기준, 왓챠플레이 독점공개 시리즈로 왓챠플레이 에서만 만나 볼 수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