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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xx

위플래쉬 Whiplash (2014)

영화가 국내에서 개봉된 당시에는(2015년) 타지에서 잠도 못 자고 일만 할 때였는데도 
꼭 보고 싶은 영화라고 생각해서 피가 묻은 드럼스틱이 메인으로 비친 영화 포스터를 휴대폰에 저장해 두었다. 
아래 첨부한 사진의 포스터에 들어간 사진과 같은 사진은 아니었지만 비슷하게 피가 묻은 드럼스틱에 촛점이 맞춰진 포스터였다.
처음 포스터를 봤을 때의 느낌이 굉장히 강렬했던 것만은 기억한다.
 

source: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83493#photoId=1390203

 
내 기억이 맞다면 타지에서의 생활을 준비하던 동안 공개된 영화이고 
타지에서의 생활이 어느 정도 틀이 잡혀갈 때 한국에서도 개봉을 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때로부터 얼마되지않는 시간이 흘러
결국엔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꽤 오랫동안 '보고 싶은 영화' 목록에만 있었을 뿐
2023년이 된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다. 
 
한동안 재미있는 영화를 발견하지 못해 영화를 보는 일을 미뤄오다가 
넷플릭스를 뒤적거릴때마다 내내 눈에 거슬리던 썸네일을 선택했던 건데 즐겁게 감상했다.
 
주인공의 캐릭터 설정은 그리 특별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흥미로웠다.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83493

 
자신이 좋아해 하고자 하는 것을 인정해주지 않는 주변사람들
그래서 그런지 시선이 항상 아래로 향해있는,
어딘가로부터 단절되어 보이는 소심한 사람이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있어서는
은은한 광기가 돋보이는 점이 캐릭터를 좀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던 것 같다. 
 
중간중간 나오는 개그코드들도 취향과 잘 맞아 
웃자고 만든 영화가 아닌 것 치고는 많이 웃었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포기가 이른 사람이고 
승패를 결정짓는 것들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열심과 노력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해왔던 것 같다.
학생 때조차 대학이나 수능은 남이야기였고 
'대학을 못 가면 남들보다 일찍 일하는 거지 뭐'라는 식이었다.
실제로 대학교도 상황에 맞아 갈 수 있는 곳을 갔다.
 
그런데, 딱 한번 열과 성을 다해 목표만을 위한 생활하던 때가 있었다.
이 영화를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당시의 나였다. 
 
그때의 나는 나름대로 꿈을 향해 성실히 나아가고 있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처럼, 
어떻게 보면 그저 그때에 내가 그곳에 있었기에 얻어걸린 기회일 뿐인데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노력해 왔기 때문에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했었다.
 
성공적인 미래를 확신했고, 나의 능력을 믿었던 때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스스로가 참 미련하고 어리석었지 싶다.
 
상황이야 언제든지, 어떻게든지 바뀔 수 있는 건데. 
한 치 앞조차 내다볼 줄을 모르고 스스로를 돌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많이 지치게 되었고
자야 해서 눈을 감으면 별다른 일 없이 눈물이 났다.
 
당시에는 성공한 사람들은 다 그렇게 고생하는 거라는 말들이 왜 그렇게 달가웠는지..
 
어쩌면 그저 괜찮은 처사에 지나지 않은 말일수도 있는 건데.
이 글을 쓰면서도 새삼 정말 오만하기도,
동시에 자신감에 차있었기도 했구나 싶다.
 
결론적으로 나는 예상치 못했던 일로 계획이 틀어졌고
지금은 그때의 커리어를 살리지 못할뿐더러 살릴 생각도 없다.
 
그렇게 쌓아온 경력들은 뭐랄까,
모든 것이 다 무용 해진 것이라 생각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그것들을 다시 주워다 찾아 끼울 곳이 있는 것도 아니게 되었다.
 
이미 지나온 시간들이니 주워 담을 수도, 되돌릴 수도 없겠지만,
그때의 선택들은 자주 후회한다. 
 
후회해 본다 한들
아마 나는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목표가 무한정 생성되는 것 도 아니고,
그때가서 별다른 목표가 또 있겠나 싶기도 하다.
 
이번엔 좀 더 요령 있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냥 운이 나빴던 게 아닐까
수도 없이 가정을 하면서도 최악만큼은 잘 골라 뒤로 미뤄둔 채로
그렇게 고집을 피우고 뻗대겠지 싶다.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지만, 그때의 나는 그렇다.
 
주인공은 어땠을까. 
자신이 이를 아득아득 갈며 노려온 목표가
황당하리 만치 맥락이 없는 이유로 사라졌을 때. 
그래서 이만, 여기서 바라왔던 것을 접어두기로 했을 때.
결국엔 그 모든 것들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구나. 
인정하고 다시 다음 발자국을 내디딜 때.
 
자신이 그려왔던 것과는 다른 현실을 살아가는 일이라는 게 
무언가 도전한 적이 있는 이들의 대다수가 경험했을 좌절이고 
그다지, 특별하게 드라마틱한 에피소드도 아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런 좌절을 겪었기에
인상 깊은 무대를 마지막으로 영화는 막을 내렸다.

마지막에 펼쳐진 무대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은 
주인공이 그렇게까지 몰아세워지던 한계치를 뛰어넘은 성취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굿판이나 한풀이에 가깝게까지 보이기도 했다.
 
클라이맥스로 치달을 때보다도 숨 막히고 
포스터의 첫인상보다 인상적인 엔딩이었다.
 
영화 밖에서 보자면
짜여진 시나리오에 따라 펼쳐진 장치들이고 
주인공은 정해진 역할을 수행했을 뿐인데도 
좌절을 딛고선 주인공이 다시 드럼을 연주할 때
영화를 보는 많은 이들에게 쾌감과 위안을 안겨주었을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고는 하지만,
주인공이 그 뒤로 드럼을 계속했을지
아니면 그걸로 깔끔하게 스틱을 내려놨을지
어쩌면 취미쯤으로 남겨뒀을지는 보는 이들의 마음에 달린 엔딩이 아니었을까.
 
 
무언가를 행하고자 하는 사람의 반, 혹은 그 이상은 반드시 좌절한다. 
성공과 실패, 이분법적으로만 나눠보면 그렇다. 
 
하지만 그렇게 결론 난 것들을 들여다보면
만족스럽지 못한 성공도,  만족스러운 실패도 얼마든지 있다. 
모든 성공이 행복과 이어지지 않는 것처럼 
모든 실패에 반드시 좌절이 따라붙지는 않는다.
 
경우의 수로 보면 어떨까.
100번의 실패 끝에 성공이 올 수도,
100번의 성공 끝에 실패를 겪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성공과 실패의 반복, 그리고 언젠가는 겪게 될 좌절.
그것들이 다. 정해진 운명이라 하더라도,
성공이라고 다 대단하고 요란한 것은 아니라는 말 대신
그 어떤 작은 성취라도 그것만으로 대단한 성공이라는 생각이 드는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