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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xx

사냥의 시간 (2020) / 이렇게까지 욕을 먹어야 할 영화인가

스포일러가가 포함된 글입니다. 

 

이미지 출처: 다음영화

 

많은 이들이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이라는 영화를 보고,

그런 윤성현 감독의 9년 만의 작품이라는 것을 보고,

이제훈, 안재홍, 최우식, 박정민, 박해수 등 출연자들을 보고 

많은 기대를 가지고 영화를 봤던 것 같다. 

 

나는 파수꾼이라는 영화를 보지 않았고, 

영화가 넷플릭스에서 선공개된다는 사실도 팟캐스트를 듣다가 알게 되었다.

아무리 넷플릭스에서 120억을 지불하고 독점한 영화라고는 하지만, 

하도 악평을 퍼붓던 내용을 한차례 들은 후였기도 했고

파수꾼도 보지 않았고, 9년 만의 작품이라는 것에 대한 호기심은 있었지만 기대는 없었다. 

 

 

 
 
 
 
 

디스토피아적 배경 

 

이미지 출처: 다음영화

 

영화는 한국의 경제력이 완전히 무너진 가상의 배경에서 시작한다.

거리는 미국의 슬럼가처럼 변하고,

한국의 화폐가치는 완전히 추락한다. 

당연히 제대로 된 일거리가 별로 없고,

제대로 돈벌이를 할 수 없으니 범죄가 범람하게 되고,

시위대와 대비되는 깨끗한 차림새를 한 채

말없이 서있기만 하는 경찰이 그렇듯,

방관만 해왔을것이 뻔한 정부는 힘을 잃었고,

사법부는 일을 하지 않는것으로 보인다.

물론 지금도 사법부나 언론개혁이 필요한 시점이지만

영화의 제작이 9년전 시작되었을 것을 미루어 보면,

이걸 디스토피아적인 배경이라고 할 수 있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상황들 속에서

어느 금은방 하나 터는 것쯤은 쉽게 생각하는 이들이 원하는 건

부귀영화가 아닌, 편안하고 평화로운 보통의 일상이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이들이 털어간 돈은,

(그들이 훔쳐간지도 몰랐던) 부정부패의 증거쯤으로 비치는 하드디스크에 비하면

별거 아닌 푼돈 이란 식으로 거론되고

범행을 저지르는 주인공들에게, 관련자는 너네는 이미 죽은 목숨이라 말한다.

 

이미지 출처: 다음영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연일 깜빡거리는 전자 이정표나

폐건물에 입혀진 그라피티와 같은 이미지적 배경은 

우리에게 생소하게 다가올지 몰라도,

이미 '헬조선', 'N포 세대'라는 말에 익숙해지고

'이게 나라냐'라는 플래카드가 익숙한 우리들에게

영화 속 주인공들의 상황이나 정서적 배경은 그렇게 극단적이 라거나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때문에 나는 영화의 초반부를 보면서

현실적인 느낌이 강해 선득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범죄를 옹호하자는 건 절대 아니지만

자신이 행한 행동에 대해 처절할 정도로 책임을 치러내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이 왜 무엇 때문에 이렇게 까지 하는지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라기 보다

자신이 처한, 어쩌면 불공평에 가까운 상황들을 벗어나기 위해 저지른 범죄로 인해

자신들을 쫓는 그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지 못한채

정작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존재에게 당하고만 있는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미지 출처: 다음영화

 

연일 안개와 악몽, 붉은 조명, 유독 자주 보이는 뒷모습들이

공포감이나 막막함을 잘 대변한 것 같아 

보는 내도록 주인공들의 감정에 몰입하며 봤다.

 

 

 

 

 

 

한의 존재 

 

사운드가 굉장히 잘 짜인 덕분에 긴장감이 더 고조됐다.

영화를 보는 내도록 나는 화면에서 나마 멀어지려 고개를 떨어뜨렸다가,

볼륨을 줄였다 높였다 하는 걸 반복했다.

이러한 음향효과들이 한의 끈질김과 공포감을 가중시켜 

영화가 진행되는 내도록 긴장을 놓지 못했다.

 

이미지 출처: 다음영화

 

오분을 더 줄 테니 어디 한번 도망가보라며 준석을 다시 놓아준 한의 모습이 나왔을 때

그리고 징글징글한 병원, 엘리베이터, 주차장 씬이 끝나고

나는 러닝타임이 얼마나 남았나 확인했고, 

아직 한참이나 남은걸 보고 아연했다. 

 

끝판 대장이야 뭐야.. 

지금까지도 충분히 넌덜머리가 나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하려고?

 

하물며 한은 지독하다는 소리가 나올 만큼, 끈질기기 까지 해서

후반부에 가서는, 진짜 그만 좀 해라...

짜증과 화가 뒤섞여 한숨이 다 나올 정도였다.

 

이렇듯 막막하고 공포스러운 추격전이 계속되면서

한의 존재가 어떠한 특정 인물이라기보다

내가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끈질기게 따라붙어 나를 무너뜨리려 하는 

어떠한 절대적인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

그것이 내가 선택할 수 없는 불행과 상황들처럼 보이기도

사회적 부조리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랬기 때문에 준석이 몇 번이고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자신의 사람을 잃어가며 피하거나,

때로는 분노에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반격도 해가며 마주해왔던 한이, 

채 상황판단이 되지도 않을 만큼 짧은 시간만에

악의 축에 가까운 어떤 강자의 무리 앞에 맥없이 쓰러지고 

그들에게서 도망치는 모습을 한동안 쳐다보는 주인공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박탈감에 가까운 허탈함을 느끼기도 했다.

 

추격전에 내던져진 주인공들은 3명, 한은 1명 

심지어 주인공들은 돈도 있고 무기도 있으며 

한은 맨몸에 가깝지만 뭐든지 쉽게 해낸다.

쉽게 찾아내고, 쉽게 몰아넣고, 쉽게 위협하면서 뭐든 쉽게 얻어낸다.

주인공들은 무기를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당하기만 한다.

때론 버티고 서 있는 것이 최선일 때도

어떨 땐 그렇게 버티고 서 있는 것마저 힘들 때도 있다. 

공포감 앞에서는 내가 가진 것들은 그게 무엇이든 제대로 힘을 내지 못하고

닥쳐오는 불행이나 내몰아쳐지는 상황에 이유는 없다. 

 

끊임없이 당하기만 하던 준석과 장호는 자신들의 가족과도 같은 친구의 죽음 앞에 

분노를 느끼고 반쯤은 정신이 나간 상태로 한을 상대로 총을 쏘아대며 반격한다. 

이때 한은 잠시 물러나지만, 결국 장호는 죽고 만다.

나는 이 모습을 보면서,

악에 받쳐 분노로 실행에 옮겨보지만 결국엔 현실 앞에 무너지는 모습이

약자 앞에서만 절대적이어서 이겨낼 수 없는 악이나 부조리함처럼 느껴지기도,

유독 여유롭지 못한 상황속에서만 지독하게 구는 현실이 겹쳐져 보이기도 해서 속이 상했다.  

지독한 상황들은 유독 강자보다 약자들 앞에서만 끈질기게 느껴진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

대개는 강자 앞에선 꼬리를 말고 도망가면서도 약자 앞에서는 정말 말도 안 될 정도로 한없이 강해지는

부정부패나 부조리한 힘이나 누군가의 잘못도 이유없이 닥치는 불행같은 모습들이 그렇기에 더 그랬다.

 

 

 

 

 

영화의 엔딩 

 

한을 피해 도망을 치면서,

가장 약한 캐릭터로 비치는 장호(안재홍)와

그런 장호의 가족과도 같은 준석(이제훈)이 대화를 나눌 때, 

앵글이 기울어진 모습을 보면서 꼭 한배를 타기로 한 그들의 미래가 가라앉는 모습같이 보이기도 해

모두가 행복하지 못한 결말을 암시하는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순전히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불필요한, 필요이상의 악을 행사하는 자들은

언제나 그렇듯 어떻게든 살아남아 소리소문없이 잘 살아가지만,

죽을힘을 다해 도망치고 맞섰던 준석은

결국 자신의 목적을 이루어 냈지만 행복하지 못했다. 

지긋지긋한 곳을 떠나고자 했던 준석은,

그렇게 소망하던 곳에서

죄책감과 소중한 사람을 잃은 상실감과 슬픔에 지옥 같은 생활을 한다.

 

우리의 삶이 그런 것 같다. 

목표를 정해두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발버둥을 치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놓치고 잃어버린다.

목적을 이루어 냈다고 꼭 행복이 따라붙는 건 아닌데,

우리는 그 목적에는 반드시 행복이 따라붙을 것이라 생각한다.

 

 

무언가로부터 도망친다는 게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특히 그것이 나를 해하는 어떤 것이라면

오히려 나는 최대한 빨리 포기하거나, 도망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그렇게 하는 편이다.

실제로 어떨 때는 빨리 포기하고 내려놓는 것이, 나의 안전을 확보하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준석은, 많은 상실과 괴로움을 겪으며 현실을 두려워하면서도

나약한 스스로가 처한 현실을 잘 받아들이고 직시했던 것 같다.

 

결국에 준석은 더 이상 피하지 않기로 한다.

고통 속에 괴로워하면서도 나름의 준비를 하던 준석은 

회피해왔던 현실을 받아들이고, 차라리 그곳으로 뛰어들고자 한다. 

혼자 편안하기보다, 그게 스스로가 되었든, 누가 되었든

괴로웠던 만큼의 대가를 치르기를 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글을 마치며 

 

만족스러웠던 영화 관람이었고,

배우들의 연기력도 좋았다. 

 

워낙에 배우들에게 관심이 없고 이름과 얼굴을 잘 매치시키지 못하는 편이기도 하지만,

악녀에서 한번 본 적이 있던 최우식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동일인물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영어공부 삼아 영어자막을 깔아 두고 자막에도 집중을 하려 해서 그랬던 건지

오히려 저런 상황에 저런 인물 들이라면,

저런 말들을 하겠다 하면서 공감하기는 했어도

대사가 유치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음향이나, 배우들의 의상을 포함한 미술이 좋아서

좀 더 큰 스크린으로, 좀 더 좋은 사운드로 들으며 봤으면 더 좋았을 영화인 것 같아

부득이하게 넷플릭스로 선공개를 하게 됐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스릴러나 공포, 액션 장르들은 영화관에서는 감당하지 못하는 편이라

만약 내가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봤다면 

치밀하게 입혀진 사운드 덕에 오히려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 고통스러웠을 것 같기도 하다. 

 

이미지 출처: 다음영화

 

아무래도 에피소드가 메인이 되는 영화다 보니, 

스토리나 개연성에 있어서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고 

특히나 전작이 훌륭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그런 전작을 보고 오랜 기간 기대를 했다면 실망이야 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까지나 혹평을 받아야 하는 영화인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그만큼 기대가 컸던 감독의 작품이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어서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이 보고 싶어 졌고, 

앞으로 나올 그의 영화도 기대가 된다. 

 

 

 

*넷플릭스 단독 선공개 영화로, 넷플릭스에서 관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