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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XXXX

한강 '흰 The Elegy of Whiteness' (2016)

 

출처: yes24

 

 

다른 색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색이면서

무결한 탓에 오는 성스러운 이미지에서 오는 위압감을 느끼기도 한다. 

순백의 깨끗함을 떠올리면서 동시에 죽음을 떠올리게 하기도 하는 

가장 순수한 본질과는 다르게 어떻게 보면 이중적인,

상반된 이미지를 동시에 가진 색. 

다른 색과 섞일 때 색을 한층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특성까지 좋아하는 색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색이기도 한 '흰색'이

주제이자 제목이었기 때문에 읽기 시작한 책이었다.

 

욕심은 많고 독서를 위해 따로 내는 시간이 많은 편은 아니어서 

이 책 저책 보다 말고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책도 2년 정도는 보다 말다 보다 말다 했던 것 같다. 

 

얼마 전 3시간 정도 밖에서 대기할 일이 있어 

작정을 하고 들고 갔던 책이다.

 

(언제 표시해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가름 끈으로 표시해뒀던 부분을 읽다가

혹시라도 놓치는 부분이 있었나 싶어 처음으로 돌아가 읽었다. 

 

기억에 아직 남아있는 내용인데도 머릿속에 쉽게 들어오지 않았고 적응하지 못했다. 

채식주의자를 읽을 때도 느꼈던 기분이었다. 

 

특유의 가라앉은 분위기 때문이라고 추측은 하고 있지만 

내가 읽은 (아직 채식주의자는 몇 년째 완독도 못했지만) 한강 작가의 작품

채식주의자, 흰 에서의 주인공들을 보고 있으면

자신에게 처해진 (좋지 못한) 상황 속 깊이

좋지 못한 상황에 비해서는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가라앉아있는 것 같은

그리고 내가 그걸 들여다 보는 느낌이 든다.

체념이나 무기력과는 조금 다른 느낌. 

 

'흰'이라는 소설에서의 주인공은

언니의 죽음과 엄마의 죽음을 이야기하고 

언니의 죽음을 통해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엄마의 죽음으로 언니를 떠올리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언니의 죽음뒤에 태어나 그 이야기를 품고 성장한 주인공. 

아마도 느끼지 않아도 될 책임감이나 죄책감, 어쩌면 부담감 같은 

가볍지만은 않은 감정들을 일평생 안고 살았을 주인공은 

 

기억 속에 존재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혈육의 죽음,

그리고 그 죽음을 가장 가까이서 겪은 엄마의 이야기를 

삶과 죽음의 경계와 남겨진 사람과 떠난 사람의 경계에 대해 

'흰' 성질의 단어들과 함께 천천히 엮어내고 풀어낸다.

 

영어 제목이 흰 것에 대한(혹은 모든 흰 것에 대한) 애가, 비가 인 것을 보니

산문보다 시에 가깝게 느껴지던 글들이 이해가 간다. 

하지만 한강의 '흰'은 단순히 흰것들에 대한 시에 가까운 감상을 늘어놨다기에는 

소설 전체의 문맥을 이루는 흐름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단편적인 생각이나 감정들로 

문맥을 만들어 이야기를 이어나간 방식이 흥미로웠기도 하지만

각 이야기들의 흐름과 배치된 순서가 더 좋았다. 

 

 

죽은 언니의 죽음이 없었다면 나의 탄생도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 

그녀가 살아있었다면 이렇지 않았을까 하는 가정과

한 평생을 죽은 언니의 기억을 더듬으며 살아가던 엄마의 죽음.

내가 태어나지 않고, 당신이 그때  살아주었다면 하는 생각과 

나도 언니가 있었으면 했었는데 하는 생각들

그리고 그들이 '살아서' 갔으면 하는 바람까지.

 

덤덤한 투의 말이었지만 나는 주인공의 말속에서

방향이나 대상을 잃은 죄책감이나 얕은 원망을 느끼기도 했고

그 끝이 결국 그리움같은 사무친 감정들이라 마음이 쓰이기도 했다.  

꼭 내가 주인공의 기억과 감정들을

나란히 걸으며 나누어가진 느낌이 들었다.

 

다섯 페이지가 멀다 하고 책장 귀퉁이를 접어가며 읽은 책이었지만

특히 '경계' 부분이 좋았고,

죽음과 삶의 경계에 선 아이에게 

엄마의 젖을 물려준 게 고마웠다. 

 

주인공은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죽어야 했던 언니와 

그런 언니를 평생 끌어안고 살았던 엄마의 모습을 보며 자랐고 

수없이 겪었을 원망이나 미안함 죄책감이나 책임감 같은 감정들을 담아

그녀들이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수의가 날개가 되길 바라고 

어린아이가 엄마의 젖을 먹기를 바랐다. 

 

밥은 먹었냐는 한국의 안부 인사에는

'끼니'를 챙겨 먹는 게 힘든 일이었던 한국의 지난날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 집에서, 또는 이웃집에서 

서로의 끼니를 챙기고, 나누고

목마른 이들에게 물을 떠주던 문화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말인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누군가가 또 다른 누군가의 끼니를 걱정하거나

마음을 담아 대접하는 모습들을 보면 

울컥하는 감정이 들기도 하고 뭉근하고 따뜻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어릴 적 친구 집에서 얻어먹었던 밥이

밥은 먹고 가라는 친구 부모님의 말씀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떠올릴 때마다 비슷한 류의 울컥한 감정을 느끼곤 한다. 

 

그렇기에 유독 '경계' 부분이 마음속에 깊이 박힌 것 같다. 

 

책의 중간중간,  

원래라면 아름다울 바다나 밤하늘의 별이

색채가 빠진 흑백 사진으로 담겨 외롭거나 쓸쓸해 보인다.  

책의 처음과 끝 중간중간 들어간 사진들 중

단 2장, 새어 들어온 빛의 사진 만이 

화려하지 않은 색의 단조로운 컬러 사진으로 실렸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아무렇지 않게 지나쳐온 사진들을 다시 찾아보는 동안

좁은 공간을 비집고 들어왔을 

그럼에도 혹은 그렇기 때문에 특별하고 소중한 빛을 담은

(사실은 이미 존재 자체로 특별한)

그 사진들에 유독 시선이 오래, 자주 머물렀는데 

그럴 때마다 회복될 때마다 삶에 대한 서늘한 마음을 품게 됐다는 문구가 떠올랐다.

 

딱히 어떤 것을 느꼈는지 꼬집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모호한 감정이고 생각이었지만

크게 보면 생과 사의 순환, 

그리고 그 속, 개개인의 삶을 들여다봤을 때

크고 작은 반복과 거스르지 못하는 순환 같은 것들을 떠올렸던 것 같다. 

 

 

분량이 적은 책이었고, 워낙에 자연스럽게 읽혔던 책이라 

적을만한 감상이 있을까 싶은 책이었는데 

막상 적어보니 구구절절 사설이 길어지는 걸 보아

알게 모르게 공감됐던 부분이 많았던 모양이다. 

 

아주 오랜만에 완독 한 책이었고, 올여름 들어 처음으로 완독 한 책이었다. 

분량이 적어 부담 없이 시작했지만 여운은 길었다. 

화자가 자신의 감정을 그렇게 표현했듯,

'백 지위에 쓰는 몇 마디 말' 같았던 소설이었다.

 

 

 

 

한강 '흰' 글귀 ▽

2020/08/02 - [메모/note pad] - 한강 '흰'

한강 '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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